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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대표작 『달과 6펜스』는 평범한 런던의 주식 중개인이었던 찰스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안락한 삶을 모두 버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떠나, 결국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에서 비참하지만 예술적으로는 찬란한 최후를 맞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된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통해, 예술에 대한 광적인 열정과 사회적 규범 및 인간적 책임 사이의 충돌을 강렬하게 탐구합니다.
'달'로 상징되는 순수한 예술적 이상과 '6펜스 동전'으로 상징되는 세속적인 현실 사이에서 스트릭랜드는 오직 '달'만을 추구하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해 나갑니다. 작가는 화자인 '나'의 시선을 통해 스트릭랜드의 기행과 비정함, 그리고 그의 그림 속에 담긴 압도적인 천재성을 객관적이면서도 냉철하게 관찰하며, 천재란 무엇인가, 예술가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의 본능적인 열정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예술가의 전기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서 개인의 삶과 도덕성이 어떻게 시험받고 전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제작입니다. 스트릭랜드의 삶은 독자에게 깊은 불편함과 동시에 묘한 매혹을 안겨주며, 예술과 삶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처럼 강렬하고 때로는 추악하기까지 한 삶의 궤적은 인간 본성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예술적 승화의 경계를 탐색하는 여정입니다.
런던의 신사, 광기의 화폭을 펼치다
윌리엄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 1874-1965)은 20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문체,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로 폭넓은 대중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종종 문명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위선과 욕망, 그리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해냈습니다. 1919년에 발표된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는 이러한 몸의 문학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대표작 중 하나로, 발표 당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오늘날까지도 예술가의 삶과 본질에 대한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된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예술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고 파괴되며 또한 승화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설은 화자인 '나', 즉 작가 지망생인 젊은 영국인이 런던에서 평범한 주식 중개인으로 살아가던 중년의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시작됩니다. 스트릭랜드는 겉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다소 따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물로,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자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아무런 예고나 설명 없이 가족과 직장, 그리고 안락했던 모든 삶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파리로 떠나버립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일탈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그가 다른 여자와 도피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나'가 파리에서 직접 만난 스트릭랜드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 오직 그림에만 몰두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내면의 강렬한 충동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렸다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이나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문명화된 사회의 규범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광기처럼 비춰집니다.
스트릭랜드에게 있어 예술은 단순한 취미나 직업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열정이며, 그 외의 모든 것들, 즉 가족, 명예, 돈, 심지어 인간적인 감정까지도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는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며,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비도덕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 냉혹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이러한 스트릭랜드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의 순수한 예술적 열정과 천재성에 강렬하게 매료되는 복잡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소설은 '나'의 시점을 통해 스트릭랜드의 기행과 고독한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독자들에게 과연 예술이란 무엇이며, 천재의 광기는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집니다.
『달과 6펜스』라는 제목 자체가 이 소설의 핵심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달'은 스트릭랜드가 추구하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예술의 세계, 혹은 비현실적인 열망을 의미하는 반면, '6펜스 동전'은 그가 버린 세속적인 가치, 즉 돈, 안정, 사회적 평판과 같은 현실적인 삶을 상징합니다. 스트릭랜드는 발밑의 6펜스 동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밤하늘의 달만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현실적인 모든 것을 희생하고 오직 예술이라는 이상만을 쫓아갑니다. 이러한 그의 삶의 방식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광기로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숭고한 아름다움과 절대적인 자유를 향한 갈망을 느끼게도 합니다. 서론에서는 이처럼 스트릭랜드라는 비범한 인물의 등장과 그의 충격적인 선택,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회의 반응을 통해 독자들이 이 문제적인 예술가의 삶 속으로 깊이 빠져들 준비를 하도록 안내하고자 합니다. 그의 여정은 문명과 야만, 이성과 광기, 그리고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될 것입니다.
천재의 그늘, 파괴와 창조의 이중주
찰스 스트릭랜드의 파리 생활은 빈곤과 고독, 그리고 오직 그림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점철됩니다. 그는 사회적인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오직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창작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립니다. 그의 그림은 초기에는 서툴고 기괴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기존의 어떤 화풍과도 다른 독창적이고 강렬한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스트릭랜드의 예술 세계를 가장 먼저 알아보는 인물은 네덜란드 출신의 평범한 화가 더크 스트로브입니다. 더크는 비록 재능은 부족하지만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인물로,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간파하고 그를 물심양면으로 돕습니다.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더크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며, 심지어 더크가 병든 자신을 극진히 간호해주는 동안 그의 아내 블란치를 유혹하여 파멸로 이끌기까지 합니다. 블란치는 스트릭랜드의 야수적인 매력과 냉혹함에 사로잡혀 남편을 버리고 그를 따르지만, 결국 스트릭랜드에게 버림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 사건은 스트릭랜드의 비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적 열정이 타인의 삶을 얼마나 무참히 파괴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가의 특별한 사명이 일반적인 도덕률을 초월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스트릭랜드는 블란치의 죽음 앞에서도 어떠한 죄책감이나 연민도 느끼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위한 하나의 경험으로 치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에게 인간관계는 예술 창조를 위한 수단이거나 혹은 방해물일 뿐,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나'는 이러한 스트릭랜드의 모습에 경악하면서도, 그가 그려내는 그림 속에 담긴 원시적이고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할 말을 잃습니다. 스트릭랜드의 예술은 문명화된 사회의 세련됨이나 감상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원초적인 힘과 자연의 거친 생명력을 날것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의 그림은 보는 이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강렬한 매혹을 안겨주며, 기존의 미적 기준을 뒤흔드는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파리에서의 방황 끝에 스트릭랜드는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원시적인 자연과 순수한 삶을 찾아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그는 원주민 여성 아타와 결혼하여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광적인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으며, 그는 문둥병에 걸려 시력을 잃고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오두막 벽 전체에 혼신의 힘을 다해 최후의 걸작을 그려냅니다. 이 벽화는 그의 삶 전체를 응축한 듯한, 강렬하고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담고 있지만, 그는 유언으로 자신이 죽은 후 오두막을 불태워 그림과 함께 재로 만들어버리라고 명합니다. 이러한 마지막 행동은 그의 예술이 타인의 인정이나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자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순수한 행위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그의 걸작이 영원히 사라짐으로써 그의 예술은 신화적인 아우라를 얻게 되고, 문명세계에 대한 그의 마지막 조롱이자 저항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서머싯 몸은 화자인 '나'의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영웅화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의 천재성과 비정함, 창조적인 열정과 파괴적인 이기심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독자는 '나'와 함께 스트릭랜드의 삶을 따라가면서 끊임없이 그를 판단하고 이해하려 하지만, 그는 결코 쉽게 규정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존재로 남습니다. 그는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예술이라는 거대한 힘에 사로잡힌 '악마에 홀린 사람'과도 같습니다. 몸은 이러한 스트릭랜드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예술가의 삶과 책임, 그리고 천재와 광기의 경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들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달빛 아래 흩어진 6펜스, 예술과 삶의 영원한 질문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한 문제적 예술가의 삶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고도 불편한 질문들을 던지며 오랜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나 성공 신화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서 인간의 삶과 도덕,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 어떻게 시험받고 재평가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가족과 사회, 그리고 인간적인 모든 관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오직 자신의 예술적 이상, 즉 '달'만을 추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파멸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이고 강렬한 예술 세계를 창조해냈습니다. 과연 그의 삶은 성공한 것일까요, 아니면 실패한 것일까요? 그의 예술적 성취는 그의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이 시대를 초월하여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독자 스스로 그 의미를 곱씹어보게 만드는 데 있을 것입니다. 몸은 스트릭랜드를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다만 그의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관찰하고 기록할 뿐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스트릭랜드의 극단적인 선택과 삶의 방식에 대해 각자의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예술의 본질, 천재의 조건,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스트릭랜드처럼 현실의 제약과 관습을 벗어나 순수한 이상을 추구하고 싶은 '달'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원하는 '6펜스'에 대한 욕망이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스트릭랜드는 그중 한쪽을 극단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우리에게 그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찬란하면서도 동시에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예술가의 삶과 일반인의 삶 사이에 놓인 근본적인 차이와 갈등을 탐구합니다. 예술가는 때때로 일반적인 사회 규범이나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살아가며, 그들의 창조적인 열정은 종종 자기 파괴적이거나 타인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스트릭랜드는 이러한 예술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며, 그의 삶은 예술이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파멸로 이끄는 악마적인 힘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그의 마지막 걸작이 불타 사라짐으로써 그의 예술은 영원한 신화로 남았지만, 그의 삶 자체는 고독과 질병, 그리고 비참함 속에서 마감되었습니다. 이는 예술적 성취와 인간적인 행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때로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치임을 시사하는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될 수 있는 모든 극단적인 행위와 그 결과를 냉정하게 응시하며,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입니다. 서머싯 몸은 스트릭랜드라는 잊을 수 없는 캐릭터를 통해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둡고 원초적인 부분과 가장 숭고하고 창조적인 열정이 어떻게 한 개인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우리는 어쩌면 밤하늘의 달을 바라볼 때마다, 그리고 발밑에 떨어진 동전을 발견할 때마다, 스트릭랜드의 고독한 영혼과 그가 남긴 예술과 삶에 대한 영원한 질문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에서 '달'과 '6펜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시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